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을까?
2026.09.09

청킹맨션, 느슨한 연결과 겸사겸사 돕기
이상적인 공동체의 바탕은 의외로 깊은 신뢰와 끈끈한 유대가 아니라 느슨한 연결일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때 우리는 대개 비슷한 모습을 떠올린다. 구성원들은 서로 깊이 신뢰하고, 끈끈한 유대를 맺으며, 서로를 돌보고, 각자 책임을 다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그렇지만 이런 공동체를 실현하기란 어렵다.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야 하고, 그렇게 쌓인 관계에는 기대와 의무가 생긴다. "내가 너를 도우면 네가 나를 도울 것이다"라는 기대와 "네가 나를 도왔으니 내가 너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부담을 느끼기 쉽다.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그 부담이 죄책감이나 배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꼭 서로를 깊이 알아야만 도울 수 있을까? 서로를 잘 알지 못해도 돕고 돌보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오가와 사야카의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는 그런 공동체를 보여준다. 홍콩 청킹맨션에는 탄자니아 인들이 모여 산다. 난민 신분으로 사는 사람, 불법 체류를 하게 된 사람 등 홍콩에 온 이유도, 사업 형태도, 경제 상황도 제각기 다르다. 이들은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서로의 사정을 깊이 알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비즈니스맨들이다. 그런데도 서로를 돕는다. 정보 교환 같은 작은 일부터 홍콩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모국으로 운구하는 프로젝트까지, 규모에 상관없이 서로를 돕는다. 교역에 필요한 물자를 전하고, 모국에 있는 가족에게 줄 선물을 맡아 전달해 주거나, 직접 홍콩에 올 수 없는 동료의 상품을 판매해주기도 하고, 바쁜 동료 대신 고객을 챙기기도 한다. 이처럼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돕고, 모든 게 비즈니스 원리로 돌아가지만 약육강식 경쟁은 없다.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 조건 없는 선행을 실천한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는 이유로 오가와 사야카가 찾은 답은 '겸사겸사'다. 특별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 일을 하는 김에 돕는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길에 태워 준다거나, 모국에서 물자를 전달하는 김에 동료의 물건도 끼워 넣어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내가 어차피 이 일을 하는데, 당신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애써 시간을 내거나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일상 속 상호 부조가 이루어진다. 오가와 사야카가 전하듯 이들은 "내가 너를 도우면 네가 나를 도울 것이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울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 간에 주고받는 도움을 그 관계 안에서 청산해야 할 빚으로 보지 않고, 관계를 확장해 더 넓은 사회 안에서 도움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곳 청킹맨션 공동체에서는 물건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시신을 운구하는 사람이 있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도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흔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는 각자가 자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이들의 신뢰는 여느 공동체와는 다른 논리를 따른다. 이 사람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부자이고, 어떤 성공과 실패를 했는지, 내가 도움을 주면 갚을 수 있을지 등은 도움을 줄지 말 지 결정하는 판단 기준이 되지 않는다. 가지각색의 사연으로 홍콩에 오게 되었기에 서로의 과거와 사정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그 사람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진짜 모습'이나 '원래의 자신'이라는 것은 없고, 사람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이나 과거를 그 사람의 인격과 연결 짓지 않는다. 대신 현재 상황만을 고려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한다. 이들에게 신뢰는 사람 전체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제한적 신뢰다. 타자의 민낯을 모른다고 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한정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홍콩과 중국이라는 배경의 특수성과 불안정한 사업 자체의 본질에 따라 이들의 삶과 사업은 끊임없이 변한다. 언제든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바뀔 수 있다. 성공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계속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모두가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관계이며, 구성원들은 이처럼 상호부조 관계가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상적인 신뢰 관계라고 하면 영원해야 할 것 같지만, 이들은 지금 필요한 만큼만 서로를 믿는다.
지금 이 디지털 사회에서 청킹맨션의 작동 방식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어서 오히려 연결될 사람을 판단하고 선별하고 선택한다.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고른다. 별점이나 신용점수 같은 것은 신뢰를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과거의 기록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킹맨션에서는 누가 도움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와 느슨하게 연결을 맺는다. "사기를 당했다면 가장 도움이 될 사람은 (경찰이나 변호사가 아니라) 사기꾼의 친구"라는 청킹맨션의 보스, 카라마의 말처럼 말이다. 여기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다.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 이력이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고, 누구나 다 성공할 가능성과 실패할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시스템들은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지만 청킹맨션의 시스템은 과거의 정체성보다 현재의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
청킹맨션 사회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어떻게 서로 적당한 도움을 주고 받는지 보여준다. 선행을 결심하지 않아도 자기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동체. 누구든 언제든 불운을 겪을 수 있음을 알고, 다시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 돕는 사회. 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제도가 없는 곳에서 정보와 경험, 기술과 관계를 공유하며 스스로의 안전망을 만든다. 언뜻 이상적인 공동체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회의 조건을 다시 묻게 한다.
왜 대안적 공동체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지는가? 중심의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주변(margin)에서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해결하며 새로운 사회적 형식을 실험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더 극단적인 '주변'에서는 어떤 공동체가 만들어졌는지 살펴본다. 국가의 질서 밖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국가와 법의 질서에 정면으로 맞서던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를 만들었을까.